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문단 편집) === 동정적 === 불행한 인물들 중 유독 엘리자베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비극적 결말과 더불어 '마지막 황후'라는 상징성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는 해석이 있다.[* 덤으로 시씨는 40년이 넘도록 황후 자리를 지킨, 합스부르크 왕조 역사상 최장수 황후이기도 했다.] 사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는 [[카를 1세]]의 아내인 [[부르봉파르마의 공녀 지타|부르봉파르마의 지타]]지만 지타는 고작 2년만에 남편과 함께 폐위되어 쫓겨난 터라, '저물어가는 거대 제국의 마지막 황후'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건 엘리자베트다.[* 한국사에서 [[경술국치]] 시기에 재위중이었던 진짜 마지막 황제와 황후는 [[순종(대한제국)|순종]]과 [[순정효황후 윤씨]]지만, [[고종(대한제국)|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인상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게다가 엘리자베트는 외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지면서 상업적으로 흥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것. 또한 옛날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면이 긍정적이고 선한 인물상을 추앙하던 것과 달리 현대인들은 다면적인 인물상을 더욱 인간적이라고 느끼고 선호하는 덕도 있다. 엘리자베트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했으며 [[헝가리어]][* 헝가리어는 라틴어 계열 유럽 언어들과는 계통이 달라 서유럽인들이 배우기 아주 까다로운 언어였다. 남서유럽에서의 [[바스크어]]([[바스크]])·[[모로코]] [[아랍어]]([[안달루시아]]), 남동유럽에서의 [[튀르키예어]], 북유럽에서의 [[핀란드어]]·[[에스토니아어]]·[[사미어]], 동유럽에서의 [[타타르어]]·[[조지아어]]·[[아제르바이잔어]]와도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셈이다.], 고전 그리스어, [[라틴어]] 같은 어려운 언어들을 마스터할 정도로 지성이 뛰어났다. 또한 남성 승마 기수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스포츠에도 능하고, 문학적 재능도 있어서 시 쓰는 게 취미였고(정작 문학적으로는 저평가를 받는다.),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고관을 가졌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분야에 소질을 보였음에도 그걸 발전시킬 수 없는 황후라는 위치에 있었던 탓에 개인적인 관심사와 취미의 범위를 벗어난 제대로 된 성취는 이룰 수 없었다. 몇 십 년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자유로운 현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인물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황실이라는 화려한 감옥에 갇히고 본인, 남편, 자녀들 모두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기에 그 비극성이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것.[* 물론 이렇게 시대를 잘못 태어나는 재인은 남녀불문 많았다. 시어머니 [[조피 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조피 대공비]]도 당차고 총명한 성격의 공주였으나, 정신 지체장애가 있던 프란츠 카를 대공([[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버지)와 강제 정략결혼을 했고 [[나폴레옹 2세|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사람]]마저 요절하면서 홀로 오스트리아 황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조피는 황후가 되길 포기하고 아들을 즉위시켰기 때문에 평생 대공비로만 남았다. 때문에 엘리자베트는 엄청난 미녀에 제국의 마지막 황후라는 타이틀까지 얹어지면서 인기가 어마어마해진 것이다.] 사실 엘리자베트는 평생 거의 가출 상태로 살다보니, 2차 대전 이후까지도 오스트리아에서 거의 무존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